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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10-28 11:38
"너그러움과 해학"의 저자 정양모씨와의 만남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571  
지난 9월 30일 [너그러움과 해학]의 저자 정양모 선생을 모시고 우리 겨레가 자연과 어우러 져 살아오면서 빚어낸 "미의 특성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다. 조선조의 미술은 생활미술이라고 고유섭선생 도 말했거니와, 자연을 사랑하는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심성과 천재적인 예술감각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생활용품, 즉 도자기나 목기 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중국처럼 완벽한 것을 추구하다 과장된 표현으로 빠져 보는 이로 하여금 산만함과 긴장감을 느끼게하는 그런 것도 일본처럼 기교를 부려 칭찬을 받으려는 조바심의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는 구수한 한국적인 미, 의연 하고 여유있고, 인위적인 기교가 없이 단순 소탈한 미를 맘껏 발휘한 밥그릇, 장롱,문방구 등, 그래서 우리의 것은 생명력이 넘쳐 있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균형감 각과 조화미를 간직하고 있어 한번 그 맛에 끌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푹 빠지게 된다. 한국적 기질의 특징을 한이니 슬픔이니 하는 것은 일본사람들의 악의적인 조작이지 전혀 근 거없는 모함이다.

그리고 예술감각 뿐만 아니라 천문관측, 별자리, 그림, 측우기, 금속활자등 과학적인 두뇌도 뛰어났다. 우리 조상은 9세기 후반에 벌써 흙으로 백자를 구워내지 않았는가? 우리 고유의 것을 말살하도록 갖은 짓을 다한 일본사람들도 한국적인 조형의 미에는 완전히 매료당했다.

어조나 태도에서 유난히 한국적인 풍모를 지닌 정양모 선생의 강의는 일본사람들이 한국의 미와 정신의 말살정책을 어떻게 펼쳤나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하였다. 이 지구상에 전무후 무한 사건이 국왕이 버젓이 거처하고 있는 궁을 헐어 버리고 그 곳에 시장판같은 박람회를 열고는 그 지형에서 일부러 3.5도쯤 삐딱하게 거대한 총독부 건물을 세운 것이다.

정궁인 경복궁은 태조 때부터 시작하여 세종조에 이르러 증축 완공된 것인데 1592년 임진왜 란 때 완전히 불에 타 폐허로 내려오다가 약 270년 뒤인 고종 당시 대원군이 왕실의 권위를 되 살리려고 갖은 고통을 감내하며 아름다운 주위의 산과 지형에 맞추어 경복궁외에 많은 전 각들과 홍례문, 광화문 등을 잘 설계했다.

이렇게 가난한 우리 겨레의 피땀으로 이룩해 지은 지 50년밖에 안된 궁을 무참히 헐고 총독 부와 그들의 관사를 지었다. 만약 일본 천황이 세워놓은 정궁의 이마를 짓누르게 했다면 저들 은 아마 모두 할복자살을 했을 것이라고 정선생은 말씀하셨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경복궁 의 정수리 격인 정북에 총독의 관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사물의 중심이 흐트러지면 거기서 파생된 모든 것이 바로 되기 어렵고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더 크게 어긋나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총독부 철거에 대한 소감을 극히 온건한 추상적으로 정선생은 말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사학과 졸업.
한국 미술사학회 회장,
국립경주박물관 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역임.
문화재위원 박물관분과 위원장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이조 도자>, <분청사기>, <백자>, <한국의 도자기>, <고려청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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